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 강준혁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 심재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정책과장,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상임이사. 사진=김원정 기자
비대면 진료 중개업자의 의약품 도매업을 사전에 원천 금지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두고 벤처·스타트업 업계와 보건복지부가 정면으로 맞섰다.
벤처업계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해당 법안이 불공정 행위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혁신 자체를 봉쇄하는 과도한 규제라며 사후 규제 중심의 대안 입법을 촉구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유통·처방·조제 분리라는 보건의료의 기본 원칙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자 이해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규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16일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는 국회 의원연구단체 유니콘팜 주최로 '약사법 개정안, 벤처업계에 의견을 묻다'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벤처·스타트업 업계, 투자업계, 관계 부처 인사와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약사법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최지영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상임이사는 "플랫폼이 추구하는 혁신과 동시에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논의하고자 한다. 닥터나우가 약국 도매업에 진출한 배경은 비대면 진료 이후 필요한 약을 찾지 못해 여러 약국을 전전하는 이른바 '약국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혁신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또 비대면 진료 후 약 수령 성공률을 근거로 제시하며 "재고 정보 서비스 도입 이전에는 첫 방문 약국에서 약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이 절반 수준에 머물렀지만, 서비스 제공 이후에는 80% 이상으로 높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 제도가 완결되기 위해서는 약 수령까지 이어지는 인프라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거대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공급자를 종속시키고 선택권을 제한한 사례가 누적되며 국민적 불신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닥터나우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우려 이후 약국 우선 노출 구조를 환자 위치 중심의 지도 기반 방식으로 전면 개편했고, 의약품을 구매하지 않은 약국에도 재고 관리 시스템을 개방하는 등 오해 소지가 있는 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왔다"고 설명했다.
최 상임이사는 "리베이트, 환자 유인, 끼워팔기 의혹에 대해서도 투자 구조와 운영 방식, 법적 기준에 따라 사실이 아님을 적극 소명해 왔다"며 "우려를 무시한 채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설득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약사법과 공정거래법만으로도 불공정 행위는 충분히 처벌할 수 있음에도, 발생 가능성만으로 직업적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타다금지법과 유사한 선례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벤처 생태계 전반의 위축을 우려했다. 그는 "최근 3년간 기술 창업 기업 수가 감소하고 있고, GDP 대비 벤처 투자 비중도 주요 국가에 비해 크게 낮다"며 "정부가 40조원 벤처 투자 시대와 규제 혁신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신산업의 시장 진입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공정 행위가 우려된다면 사후 규제를 통해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국민 편익에도 부합하는 접근"이라고 말했다.
이기백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정책사업본부장은 투자 환경 측면에서의 파급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닥터나우 사안은 플랫폼 기반 혁신 기업과 전문 직역 단체 간 갈등의 연속선상에 있다"며 "합법적으로 영위되던 사업이 입법으로 갑자기 금지될 경우 투자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대되고, 디지털 헬스케어 전반에 대한 신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화장품 개정법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 사례를 언급하며 "사후 규제를 통해 산업 경쟁력과 투자를 동시에 키운 성공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 측에서는 부처 간 관점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심재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정책과장은 "불공정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목표에는 이견이 없지만, 원천적 금지보다는 사후 제재가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업계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며 "합법적인 틀 안에서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강준혁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약사법 개정안을 '이해충돌 방지법'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금지법이 아니라, 의약품 유통·처방·조제 분리라는 일관된 원칙을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에도 적용한 것"이라며 "플랫폼이 도매상을 보유할 경우 구조적으로 약품 유인과 시장 교란 가능성이 생기고, 이는 결국 환자의 선택권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 과장은 "약국 뺑뺑이 해소를 위해 (플랫폼 기업이) 도매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공급·처방·조제 데이터를 적법하게 활용해 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재고 정보 제공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자체가 법적 공백 속에서 운영돼 왔고, 제도권 편입 과정에서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토론회를 주최한 유니콘팜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기업이 어떤 사업을 할지는 원칙적으로 기업의 자유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위험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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